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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은 유희경과 매창의 시

매창을 생각하며

유희경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오동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

娘家在浪州(낭가재낭주)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이화우 흩뿌릴 제

이매창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시비(詩碑) 안내

시비(詩碑)

이 시비(詩碑)는, 17세기 초 도봉(道峯)의 산수를 사랑해서 <도봉서원> 인근에 ‘임장(林莊)’을 지어 기거하다 여생을 마친, 당대의 문장가 촌은(村隱) 유희경과 부안 태생의 이매창이 주고받은 사랑 노래를 새긴 것이다.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은 비록 하층민이었지만 남언경(南彦經)에게서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워 국상(國喪)에 자문할 정도로 예(禮)에 밝았다. <도봉서원(道峯書院)> 창건의 전반적 책임을 맡았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공로 등을 인정받아 품계가 종2품 가의대부(嘉義大夫)에까지 올랐다. 『촌은집』을 남겼다.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은 전북 부안 출신 기생으로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3대 여류시인의 하나로 꼽힌다. 이름은 향금(香今), 호는 매창 혹은 계랑으로 썼다. 시와 거문고에 능하였으며 촌은과의 사랑으로 ‘이화우 흩뿌릴 제’ 라는 명시를 남겼고, 뒷사람들이 『매창집』을 묶었다. 변산의 개암사에 그 목판이 전한다.

劉希慶의 詩

계랑에게 주노라 (贈癸娘)

일찍이 남국에 계랑 이름 소문나
글솜씨 노래 재주 서울까지 울리더니,
오늘에야 그 모습 대하고 보니
선녀가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구나.

曾聞南國癸娘名. 詩韻歌詞動洛城.
今日相看眞面目. 却疑神女下三淸.

길 가면서 계랑을 생각노라 (送中憶癸娘)

가인 두고 떠나서 초운이 막혀 있고
나그네 마음 아파 잠 못 드는데,
기러기 오지 않아 임 소식 끊어지니
오동잎에 찬빗소리 차마 못 듣겠구나.

一別佳人隔楚雲, 客中心緖轉紛紛.
靑鳥不來音信斷, 碧梧凉雨不堪聞.

李梅窓의 詩

취하신 님께 (贈醉客)

취하신 손님이
명주 저고리 옷자락을 잡으니,
손길 따라 명주저고리
소리를 내며 찢어졌군요.
명주 저고리 하나 쯤이야
아까울 게 없지만,
임이 주신 은정까지도
찢어졌을까 그게 두려워요.

醉客執羅衫, 羅衫隨手裂
不惜一羅衫, 但恐恩情絶

임생각 (閨怨)

애끓는 情 말로는 할 길이 없어
밤새워 머리칼이 半 남아 세였고나

생각는 情 그대도 알고프거던
가락지도 안 맞는 여읜 손 보소

相思都在不言裡, 一夜心懷鬢半絲.
欲知是妾相思苦, 須試金環減舊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