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문동
- 쇠죽골 : 쌍문1동 내시 묘가 있는 아랫마을. 동대문 시장에 소를 매매하러 가기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소장수들이 이곳에서 쇠죽을 먹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소여물골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 제성겻 : 계성과 그의 효성 지극한 아들이 살았다는 마을. 쌍문제1동에 해당한다.
- 해등천 : 현 쌍문제2동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소군래라는 하천에서 깨끗한 물이 이 마을을 거쳐 방학동으로 흘렀는데, 물이 바닷물처럼 맑아서 해등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방학동
- 박수겻고개 : 쌍문리에 있는 고개
- 가살피 : 방학동과 도봉동과의 경계지점에 있는 마을
- 금성윗돌 : 방학굴 앞에 있는 들
- 도당마을 : 현재 방학 3동 신동아 4차 아파트 단지 일대로 도봉산자락에 복숭아꽃, 오얏꽃 등 이 만발하는 평화로운 마을로 국태민안한 요순 시대를 방불케 하여 요 임금의 칭호인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에서 '도당'이라는 글자를 따서 도당마을이라 하였다고 한다.
- 금잇들 : 방학동 도당마을 앞에 있는 들. 거머리가 많았다고 한다.
- 논굴재 : 방학굴에 있는 고개
- 복개내 : 방학동에서 중랑천으로 들어가는 내. 한자로는 '福開川'
- 생잇돌 : 도당마을 앞에 있는 들
- 성고개 : 바위가 성(城)과 같은 고개 밑에 있는 마을. 바위를 돌아 들어간다 하여 암회리(岩回 里)라고도 이름하였다.
- 시루봉 : 방학동 도당마을 뒤에 있는 봉우리. 모양이 시루같다.
- 원당이 : 소원을 비는 신당(神堂)이 있어서 생긴 이름. 한자로 '元唐里'
- 초당마을 : 초당(草堂)이 있었던 마을
- 황소바윗굴 : 방학굴에 있는 골짜기. 모양이 황소같은 바위가 있다.
창동
- 말미 : 옛날 산에다 말을 많이 먹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 한자는 마산동(馬山洞)
- 모랫마을 : 창1동과 월계동과의 경계지역에 모래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 방줏굴 : 방죽이 있는 마을
- 배라깃들 : 수원(水源)이 적어 날씨가 가물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창동 292번지, 300번지 일대에 해당한다.
- 삼봉못(三峰못) : 부근에 삼각산의 봉우리가 비쳤다는 연못
- 유만이(流滿里) : 큰 늪이 있어 물이 가득하였던 데서 연유한다. 일명 한내(漢內)
- 종자들 : 유만이 앞에 있는 들. 7년을 가물어도 물이 있어 메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 창골 : 조선시대 창고가 있었던 데서 연유한다.
도봉동
- 다락원 : 다락으로 된 원(阮)이 있었다. 한자로는 누원(樓阮)이라고 한다.
- 도당재 : 굿을 하는 신당이 있는 고개
- 뒷굴 : 도봉서원 뒤에 이는 골짜기
- 서원말 : 도봉서원이 있는 마을
- 서원내 : 도봉서원 앞에서 흐르는 시냇물의 이름을 따라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한자로는 書阮 川洞이라고 한다.
- 서낭당 : 무수울의 다른 이름. 서낭당이 있었다.
- 무수울 : 도봉동 104번지 일대로 마을 이름의 유래는 약 500여년 전에는 수철동(水鐵) 일명 무 쇠골이라 하였고, 이후 무수동(無愁洞)이라 개칭하였는데 그 연유는 영해군 묘소 형국이 선인무수지형(仙人舞袖之形)으로 신선이 소매를 펼치고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하여 무수동(無愁洞)이라 호칭을 했다. 또한 서낭당이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생겼다는 설과 세종이 재위시 이 곳에 왔다가 원터(도봉동 578번지) 약수터의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 곳이야말로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고 하여 무수골로 칭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