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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암석불좌상 (滿月庵石佛坐像)

  • 소재 : 도봉산길 89(도봉동 산29번지-도봉산내)

    만월암석불좌상

    • 도봉산 만장봉 바로 아래의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가 세운 만월암에는 현재 석굴 법당만 남아있는 초라한 모습이지만, 이 안에는 단정한 체구의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부처의 앉은 모습을 화강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석굴법당 암벽에 「건륭 사십구년 유월 일 개금...」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1784년 이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700년을 전후한 시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높이 80㎝, 머리높이 25㎝, 어깨 폭40㎝의 크기이며 온화하고 아담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단정한 체구에 두 어깨를 감싼 법의(法衣)를 입고 있으며 왼손을 가부좌한 다리 위에 엊은 선정인을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부근에서 아래로 내려 손가락이 땅에 닿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는 이 불상은 18세기 초엽의 전형적인 불상 조성 양식을 따르고 있는 가운데서도 뛰어난 수작(秀作)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석굴법당의 석벽에는 많은 글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석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원통사

  • 소재 : 도봉로169길 520(도봉동 546)

    원통사

    • 원통사는 신라시대 경문왕3년(863)에 도선국사가 이곳 도봉산에 절을 창건하여 원통사라 하였다. 원통(圓通)이란 ‘절대의 진리는 모든 것에 두루 통한다’는 뜻으로 관음보살의 덕을 칭송하여 일컫는 말이다. 원통사는 예로부터 좌우에 수락산과 삼각산을 거느리고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최고 길지에 자리잡은 수행기도처로 알려져 왔다.
      조선초기의 무학대사를 비롯하여 근대에는 만공, 동산, 춘성스님 등 선지식이 이곳에 머물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관음기도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조선 영조때 영의정을 지냈던 조현명, 서명균 등이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며 심신을 닦았던 곳으로 당대 유학자들 사이에 명소로 이름 높았다.
      우이암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 원통사 주변에는 두꺼비, 학, 독수리, 거북 등 108종류의 형상을 갖춘 바위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원통사에서 바라보면 수락산, 불암산, 초안산 사이사이로 도봉구, 노원구 일대가 눈아래 펼쳐진다.
  • 교통편 : 지하철 1호선 도봉역 하차 무수골 방향, 도봉08번(무수골입구하차) 산행60분
  • 특징 / 볼거리
    • 상공암 각자(相公岩 刻字)
      원통사 산신각 아래 거북바위 윗면에는 <相公岩>이라고 쓴 큰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다. 세로로 새겨져 있는 바위글씨는 먼저 75X230cm 크기의 직사각형 선을 자연 바위면에 그린 후 그 안에 큰 글씨로 새겨 놓았다. 이 글씨는 ‘원통사 약사전 아래 거북바위에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을 새겼다고 하나 누구에 의해서 언제 새겨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 원통사는 도봉산 소귀바위와 보문산장 바로 아래 위치한 사찰로 주변에는 두꺼비, 학, 독수리, 거북 등 108종류의 형상을 갖춘 바위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천축사

  • 소재 :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길 92-2 (도봉동 549)

    천축사

    • 천축사는 서울시 도봉구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이 절을 천축사(天竺寺)라고 이른 것은 고려 때 인도승려 지공(指空)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천축사의 연혁은 신라 673년(문무왕 13)에 의상대사가 의상대에서 수도할 때, 제자를 시켜 암자를 짓게 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 한 것에서 출발하였으며, 그 뒤 고려 명종 때에 근처 영국사(寧國寺)의 부속암자로 맥을 이었다. 이후 조선시대인 1398년(태조 7)에 태조가 옛날 이 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렸다.근대에는 1911년에 화주 보허축전(寶虛竺典)이 관음ㆍ신중탱을 봉안하고, 1931년에 주지 김용태(金瑢泰)가 천축사로 오르는 길을 확장하였으며, 이후 수많은 신도들이 천축사 도량에 불사하여 1936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가람이 조성되었다. 지금의 가람은 주지 용태스님 이후인 1959년에 중수된 것으로, 현재 주지 현공(玄公)스님이 주석하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하여 독성각ㆍ산신각을 중수하고 요사채와 공양간을 신축하여 천축사 가람을 복원하였다.
  •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

    • 19세기 서울 경기 지방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당 응석이 주관하고 대선사 하은 예가(1828~1898)가 증명한 불화로 독특한 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명성황후를 위해 상궁들이 시주하여 제작하였다는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의미도 니고 있다.
  •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괘불도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괘불도

    • 삼신불을 그린 구성과 약식 등이 19세기 서울, 경기지방 괘불 야식을 잘 계승하고 있으며 금어인 하운당 유경의 독특한 부로하 양식 규명과 19세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특징 / 볼거리
    • 도봉산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한 천축사는 깎아지른 듯 아름다운 만장봉을 배경으로 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다우며,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유명하고, 백년 묵은 보리수나무가 샘물 위쪽에 있다.

조대비 별장터(광륜사)

  • 소재 : 도봉산길 89(도봉동 401)

    조대비 별장터

    • 도봉산에 소재한 광륜사가 들어서 있는 자리는 원래 조선 익종의 비로 조대비로 널리 알려진 신정왕후의 별장터이다.
      풍양 조씨 일가인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로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고 익종이 추존되자 왕대비가 되었고, 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대왕대비가 되었다.
      철종이 후사가 없이 돌아가시자 흥선대원군의 아들(고종)을 왕위에 올리고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지만 실권은 흥선대원군에게 넘겼다.
      이는 오랫동안 지속된 세도정치를 마감하고 왕권을 살리기 위한 신정왕후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조대비는 산수가 수려한 도봉동에 별장을 지어 만년을 보냈고, 그 후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국정을 보기도 하였다.

이인신도비

  • 소재 : 도봉산길 89(도봉동 401)

    이인신도비

    • 세종대왕의 손자인 이인(李仁,1465∼1507)의 신도비로서 1509(중종4년)년에 건립되었다.
      명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이 비문에는 부모를 잃고 연산군의 핍박을 받아 아들과 함께 귀양살이를 한 왕족의 인생역정이 기록되어 있다.
      신도비는 귀부, 비신, 이수 등으로 구분 조형되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비문에는 도봉, 노원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이는 사료에 이 지역의 명칭이 전하는 최초의 예가 아닌가 생각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 남곤 (南袞)이 글을 짓고, 당대 최고 명필 김희수(金希壽)가 썼는데 비문의 글씨가 명필일 뿐 아니라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서예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